올 추석에는 고향에 오지 마세요.③ 섬마을 노부부의 한가위
- 기획·특집 / 왕보현 기자 / 2020-09-28 22:47:46
- 코로나 19로 고향 방문 자제가 불효 아닌 효도
- 노부부 가을걷이 바리바리 자식들에게 택배
- 화상통화로 손주들과 정 나누는 한가위
[티티씨뉴스 전남 신안 = 글·사진 왕보현 기자]
티티씨뉴스’는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인해 처음 맞는 비대면 추석을 준비하는 고향마을 을 찾아 ‘만남과 정’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알아보는 ‘올 추석에는 고향에 오지 마세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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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대교 야경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교량으로 2019년 4월 4일 개통되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연도교(連島橋)로 압해도(押海島)와 암태도(巖泰島)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교량의 길이는 7.22km, 폭(너비)은 11.5m이며 자동차 전용도로이다. 천사대교의 개통으로 목포항에서 뱃길로 1시간 20분, 압해도 송공항에서 배를 타면 25분 정도 소요되던 암태도를 비롯해,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자라도, 추포도 6개 섬은 육지와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사진=신안군 제공) |
지난 2019년 4월 개통한 천사대교는 암태도 주민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국토 서남단 작은 섬마을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찾는 이들이 폭증했고 주민들의 생활도 인근 목포와 바로 연결되었다. 암태도를 비롯해 인근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자라도, 추포도 6개 섬은 이제 육지나 다름없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이 명절 때 태풍으로 발 묶일 염려가 사라졌다. 관광지가 된 것 같은 섬 생활로 올 추석에는 많은 출향인들이 고향 암태도를 찾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초에 시작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은 수그러들 줄 모르고 그 위세를 더해 간다. 이윽고 방역 당국에서는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하고 올 추석은 전쟁상황이라고까지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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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수 할아버지와 김정심 할머니가 경운기를 타고 .가을걷이를 앞둔 논길을 따라 가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티티씨뉴스는 한가위 명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23일,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기동리에서 평생 논농사와 마늘, 양파, 대파 등 밭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사는 김응수(74) 할아버지와 김정심(73) 할머니 부부를 만났다.
“어쩔라구 이렇게 먼 데까지 오셨데. 우리는 아무 이야깃거리도 없는 그냥 평범한 섬사람인디”
기자는 아주 평범한 노부부의 평범한 이야기가 궁금해서 불원천리 찾아왔다고 맞장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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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부부가 자신들이 농사짓는 파밭을 둘러보고 있다. 파농사가 다른 농사에 비해 비교적 관리가 쉬워 몇해 전부터 파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고 했다. |
오늘은 파밭을 둘러보고 온종일 시금치 파종을 했다는 할아버지는 나이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암태면 노인회장과 지역 공영버스 위원장을 맡은 할아버지는 70대 중반도 여기서는 젊은 편이라며 말한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울 사는 아들과 목포에 사는 딸들에게 가을걷이한 농산물을 부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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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전남 신안군 암태면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응수 할아버지 부부가 자식들에게 보내 줄 호박을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코로나 19로 우리 지역 역시 자식들 고향 방문을 자제하는 분위기라 우리도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연락해서 내려오지 말라고 했단다. 서운하지만 그래도 영상통화가 가능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완도 취재를 마치고 목포를 지나 신안군청이 있는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건너 노부부가 사는 암태도에 도착했다.
온종일 농사일에 고단할 텐데도 자식들 자랑 좀 해달라고 하자 갑자기 어르신들의 눈빛이 밝아졌다. 바로 큰딸에게 영상통화를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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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중학생인 손녀와 영상통화를 하며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
“어이쿠, 우리 이쁜 애가 그사이 또 많이 컸네”
“할머니, 할아버지 이번 추석에는 못 내려갈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혜원이가 이만큼 사랑해요”
저녁상을 물리고 타지에 사는 손녀와 영상통화를 하는 어르신들이 손녀를 따라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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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4자녀에게 보낼 농산물을 박스에 담고 있다. |
할아버지는 “우리 손자가 이번에 고려대학교 약대에 합격했어.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나 기쁜 줄 몰라, 이번에 내려오면 용돈 좀 두둑이 줄려고 했는데”라며 “손주들이 모두 살가워서 여기 오면 우리를 꼭 껴 안주면서 ‘사랑한다,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는데 그게 난 그렇게 좋아. 이번에는 새끼들 얼굴 직접 못 봐서 많이 아쉽기는 하지”
할머니는 “TV에서 보니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라는 디, 이번 명절은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그래도 자식들이 늘 안부 전화도 하고 맛난 것도 챙겨서 보내주고 주변에서 우리 부부를 참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가 문제야, 이전에는 아들은 서울에서 사업하느라 자주 못 내려왔지만, 목포에 사는 딸들은 문지방일 닳도록 뻔질나게 들락거렸다”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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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에게 줄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잘 마른 태양초를 가득 싣고 방앗간을 찾은 부부. |
- 암태도 노부부의 살아온 이야기
서남단 해상에 있는 암태도(岩泰島)는 이름 그대로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섬 한복판에 승봉산(해발 355m)이 우뚝 솟아있고 원래는 보잘것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나 암태도와 기동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묵직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소작쟁의의 출발점인 암태도 소작쟁의다. 자은도,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까지 번졌다. 바다를 건너 뭍에까지 들불처럼 번져 농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1년여에 걸친 암태도 소작쟁의는 부당한 지주의 압력과 일제의 탄압에 맞서 스스로 권리를 지킨 싸움이었다. 암태도 소작쟁의의 불씨가 다른 지역으로 들불처럼 퍼졌다. 한국농민운동사의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처럼 암태도 주민들은 단결력과 의식 수준이 높다. 그리고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업의 비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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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태도 소작인 항쟁 기념탑 1924년에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의 효시였다. 이것은 암태도 소작인들의 고율 소작료 인하운동으로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암태도 소작료 불납운동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구속, 희생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8년, 높이 6.74m에 면적 1,360㎡의 ‘암태도 소작인 항쟁기념탑’을 세워 암태도의 숭고한 소작인 항쟁을 기념하고 있다.(사진=신안군 제공) |
금술 좋은 노부부는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초등학교 동창이다. 어릴 적 당산리, 오산리를 합쳐서 불린 오당마을은 85가구 300여 명이 살던 제법 큰 자연부락이었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김 할아버지 주변에는 늘 친구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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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수 할아버지 댁 인근의 기동삼거리 담벼락에 그려진 동백파마 벽화/ 벽화는 집안에 있는 애기동백나무를 배경으로 집 주인인 문병일(78)·손석심(79) 어르신을 그렸는데 코로나 19 이전에는 여행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던 암태면의 명소이다. 김 할아버지는 “원래는 애기동백도 한그루 밖에 없었고 할머니 한분만 그려져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신안군에 자기도 그려달라고 부탁해서 동백나무도 군에서 심어준 것”이라고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
“내가 그때 무슨 콩깍지가 쓰여서 결혼했는지 몰라, 나 좋다고 쫓아다닌 선생님도 있었고 암태에서는 그래도 인기가 좋았는데”라며 웃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자신의 조금 급한 성격을 잘 감싸줄 것 같은 청년 김응수의 선비 같은 품성과 성실함에 큰 점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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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가 인근 방앗간에서 직접 농사지은 참깨로 내린 참기름을 담고 있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할아버지를 점수로 따지면 몇 점이나 되나요?” 기자의 질문에 서슴없이 “기사에 안 쓴다면 이야기할게, 80점도 안 돼”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할아버지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 집사람은 100점도 넘지”라며 진심이라며 즉답했다.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미안했던지 할머니는 그래도 우리 딸들은 자라면서 아버지 같은 사람만 만날 수 있으면 무조건 결혼한다고 말했단다. 그 사이 목포에 사는 큰딸에게 전화가 와 잠시 통화를 했다. 대뜸 기자에게 취재 대상을 잘 못 선택했단다. “우리 엄마, 아빠 맨 날 싸우시는데 잘 싸우는 거 취재하러 오셨어요” 공무원 생활을 하는 큰딸 역시 엄마처럼 반어 화법의 고수인 듯했다. 할머니와 큰딸의 농담 덕분에 취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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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수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보낼 농산물을 박스에 담아 암태면 소재지에 위치한 농협에 도착해 박스를 내려놓고 있다. |
할머니 역시 대식구의 맏딸로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보잘것없는 섬에서 두 사람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삶을 일궜다. 농사만으로는 대식구가 먹고살기 어려워 할아버지는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는 뭍으로 나가 막일도 하고 전남 영암의 친척 집 맛김 공장에서도 몇 년간 열심히 일했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동안에도 할머니는 야무지게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웠다. 자식들 역시 성실한 부모 밑에서 누구 하나 속 썩이지 않고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잘 자랐다. 김 공장이 어려워져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면 소재지에서 7년간 식당을 운영했다. 솜씨 좋은 할머니 덕분에 식당운영은 생각보다 잘 돼서 돈도 좀 벌었다고 했다. 이후 힘든 식당일을 접고 농사에만 전념했다. 부부는 한 사람도 대학 공부시키기 어려운 섬에서 4자녀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아직 막내딸이 미혼이지만 “목포에서 큰 아파트 사서 혼자 잘살고 있다”라며 별로 걱정은 안 한다고 했다. 굳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놓기 싫어서이지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자식의 사업실패로 어렵게 일군 재산을 많이 잃었고 할머니가 식도가 좁아져 식사가 어려운 특이한 병에 걸려서 병간호에 힘도 들지만, 노부부는 자녀들의 뒤에서 잘되거나 못된 거나 묵묵히 응원하며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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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위해 가을걷이한 농산물을 택배로 붙이고 있다. 2주간의 추석 특별방역이 시작된 28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사람 간 만남과 이동이 줄어들면 바이러스의 확산은 멈춥니다. 이번 추석 연휴가 대면 접촉을 자제한 진정한 휴식이 된다면 다가올 가을, 겨울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하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며 이동을 자제하고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
아들 김세훈(52) 씨는 “부모님 세대가 다 그랬지만 특히 저희 부모님은 평생을 자식한테 아낌없이 쏟아 부어주시고 지금도 더 주고 싶어 하신다.”라며 “저희를 위해서 희생 많이 하셨는데 받은 만큼 잘해 드리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다. 더욱 이번 추석에는 고향 방문도 어렵고 겨우 며칠 전 건강식품 하나 보냈는데 왠지 마음이 무겁다. 두 분 모두 건강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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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태도 남강선착장(사진=신안군 제공) |
천사 같은 천사대교가 놓이면서 자식들이 수시로 집에 왔었는데 몹쓸 감염병이 돌면서 또다시 피붙이들 살 냄새 맡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70년 넘게 바닷바람과 함께 묵묵히 세상을 지켜온 김응수 할아버지는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지금의 어려움이 지나면 분명히 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지금 부는 바이러스 바람도 또한 지나갈 것이라며 기자들에게 도리어 힘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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