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상상 밀양에서 찍는 쉼표

여행 / 왕보현 기자 / 2020-05-24 22:05:13
- 위양지에 투영된 완재정과 산 그림자는 한 폭의 산수화
- 영남루 누마루에 서서
- 철마가 달리던 옛 터널이 환상의 공간으로
- 약산 김원봉 따라 항일 독립운동 산책
- 밀양댐 생태공원, 물과 쉼이 어우러진 공간

[티티씨뉴스=밀양 · 왕보현 기자]

영화 밀양의 첫 장면에서 ‘신애’(전도연)는 카센터 사장인 ‘종찬’ (송강호)에게 “밀양이 어떤 곳이냐” 묻자 ‘종찬’은 “똑같아요.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요”라 말한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밀양. 거기에 더해 영화 밀양에서 만나는 밀양은 답답하다. 환하고 밝은 햇볕은 인간 내면을 감싸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저 눈부신 것 이상이 아니었다.

▲ 위양못 완재정의 이팝나무 꽃이 만개했다(5월13일 촬영)

- 위양지에 투영된 완재정과 산 그림자는 한 폭의 산수화  

그러나 여명이 밝기 전 찾아온 위양못에서 만난 밀양은 색다른 감동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색다른 풍광 덕에 많은 관광객과 사진동호인들이 찾는 부북면의 위양못은 밀양이 자랑하는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된 곳이 가운데 하나이다. 


경남 밀양은 이제 막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찬바람이 가시기 전 매화 향기와 함께 시작한 봄 소식이 4월의 어느 날 후다닥 피어 봄바람에 한순간 흩날려버리는 벚꽃 화려함이 지난 자리에 5월 이팝나무가 소복히 피어나 눈꽃을 날리고 있다.


위양지는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사이에 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으로 무너진 것을 인조 12년인 1634년 밀양부사 이유달(李惟達)이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위양이란 양민(良民) 즉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위양못 제방길에는 왕버들, 수양버들, 이팝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과 같은 오래된 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과 화악산 아래 아름다운 들판 위에 자리한 아담한 위양지 호수 주위에는 수백 년이 된 이팝나무들이 물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과 그 아래 아름다운 들판 위에 자리한 아담한 위양지 호수 주위에는 수백 년이 된 이팝나무들이 물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무엇이 실경이고 무엇이 반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자연의 데칼코마니를 연출한다.

위양못의 아침을 취재하면서 만난 김영철(창원, 67)씨가 추천한 밀양버스터미널 인근의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시원한 조망을 펼치는 웅장한 ‘영남루’ 누마루에 서서
▲ 밀양강변의 영남루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 날 좀 보소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 오시는데 / 인사를 못 해 / 행주치마 입에 물고 / 입만 방긋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밀양아리랑은 다른 아리랑보다 매우 빠르고 흥겹다. 때문에 아랑의 전설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니라 너른 들녘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르던 농요라는 의견도 있다. 산과 강, 들이 모두 있는 밀양은 예부터 곡식과 과일 농사가 많은 풍요로운 고장이다. 연중 따뜻한 날씨에 수확하는 기쁨도 컸다. 하지만 들이 넓으니 농사는 고달팠고, 그것을 밀양아리랑이 달래줬다는 이야기다.
▲ 발열체크와 손소독을 거친 후에 영남루를 돌아 볼 수 있다.

밀양아리랑은 광복군의 군가로 사용되기도 했다. 만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하던 밀양 사람들의 아리랑에 가사만 바꿔 부른 광복군아리랑이다. 밀양에서 사라져가는 밀양아리랑의 원형이 연변에 남아있는 이유다. 세월이 흐르며 다양하게 변형된 밀양아리랑은 100여 수가 전한다. 이중 광복군아리랑을 비롯한 몇몇 아리랑은 밀양시립박물관 아리랑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밀양강은 밀양 시내를 구획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삼문동의 남쪽 가곡동에는 밀양의 현대가 표출되고 있다. 20세기 초 경부선 밀양역이 들어서면서 공장과 주택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북쪽 내일동은 밀양의 근세와 전근대를 상징한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嶺南樓, 보물147호)가 있다.
▲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영남루의 관람을 위해서는 한쪽 방향으로만 가능하다.

밀양강변에 자리한 영남루는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 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시대 처음 건설됐으나, 화재로 소실됐다가 19세기 중반에 중건됐다.
▲ 영남루 경내와 주변에 산재해 있는 국화 모양의 석화(돌꽃)

밀양강을 굽어보는 넓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우뚝 선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간격도 넓고 중층(重層)으로 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건물 가운데 두드러지게 크고 웅장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서편의 침류당(枕流堂)과 동편의 능파당(凌波堂) 등 층계로 연결한 부속 건물이 딸려 있어 더욱 장중하게 느껴진다. 내부는 문인들이 쓴 작품으로 장식돼 있으며, 누각에 발을 딛고 내려다보는 조망이 시원스럽다. 강물에 비친 영남루 야경은 밀양 8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 영남루 마당을 나서면 작곡가 박시춘의 생가가 단장되어 있다.마침 생가의 초가 이엉을 교체하고 있다.

신비로운 빛의 터널에 빠지다, 밀양 트윈터널
-철마가 달리던 옛 터널이 환상의 공간으로
▲ 트윈터널은 옛 경부선이 이어진 무월산터널을 활용한 테마파크다. 기차가 바쁘게 오갔을 터널은 시대가 변해 지난 2004년 KTX가 개통되고 철길이 끊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밀양 트윈터널은 신비로운 빛의 세계를 즐기는 이색 명소다. 특별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다양해 가족 여행지로 인기가 높고,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아 커플에게도 사랑받는다.
트윈터널은 옛 경부선이 이어진 무월산터널을 활용한 테마파크다. 기차가 바쁘게 오갔을 터널은 시대가 변하고 철로가 폐선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기차가 드나들던 어두컴컴한 터널이 2017년, 반짝이는 빛의 터널로 거듭났다. 상행 457m, 하행 443m 터널을 이은 형태도 독특하다. 두 터널의 쌍둥이 같은 모습에 트윈터널이란 이름이 붙었다. 트윈터널은 인근 만어사의 전설과 세간에 떠도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빛의 파노라마 세계다.

트윈터널은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터널 안은 밖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벽면과 천장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 LED등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마치 은하수를 건너는 기분이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탄성을 지르며 빛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발걸음이 닿는 곳 마다 포토존이다.


터널 안에 볼거리도 많다. 바닷속처럼 꾸민 테마존에는 작은 수족관이 늘어서, 영롱한 불빛 아래 유영하는 물고기를 볼 수 있다. 가족과 연인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적은 하트 쪽지가 빼곡한 곳도 보인다. 유령의 성 앞에서 사진을 찍고,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을 신나게 걷다 보면 어느새 출구에 도착한다.



약산 김원봉 따라 항일 독립운동 산책 - 보고 느끼며 체험하는 독립운동
2015년 관객 1천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은 잊혀졌던 의열단과 김원봉을 100년 만에 소환했다. 해천테마거리를 걷는 내내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대사가  떠나지 않는다.


해천은 의열기념관 앞을 흐르는 시내로, 조선 시대 밀양읍성을 따라 조성한 방어용 해자다. 근대 이후 읍성과 함께 사라진 해천은 몇 년 전 복원돼 시민의 산책로 겸 휴식 공간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항일운동 벽화를 더해 의열기념관 일대를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로 꾸며졌다.


밀양의 만세 운동 벽화로 시작하는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는 태극기의 종류와 변천사를 거쳐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으로 이어진다. 조선의용대는 김원봉과 윤세주가 주축이 되어 만든 독립운동 단체다. 요인 암살과 기관 파괴 중심이던 의열단 투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맞설 무장 부대를 조직한 것이다. 이후 조선의용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했고, 조선의용대장 김원봉은 한국광복군 부사령관이 됐다.


일제강점기 내내 해외에서 항일 독립 투쟁에 앞장선 약산은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와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 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미군정이 다시 고용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온갖 수모를 겪고, 뜻을 함께한 여운형마저 암살당하는 등 남한에서 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으로 분단을 막기 위해 김구와 같이 삼팔선을 넘어가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한 김원봉은 남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북한 정권에 참여했으나 1958년 김일성에 의해 숙청,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에 빼곡한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훈장이나 표창이 없는 이는 약산 김원봉이 유일하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독립 유공자 서훈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약산은 남과 북에서 모두 잊힌 독립운동가다.

2015년 관객 1천만을 돌파한 영화 ‘암살’은 잊혀졌던 의열단과 김원봉을 100년 만에 소환했다. 해천테마거리를 걷는 내내 떠나지 않던 차분하며 기개 넘치는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대사가 귀경길 내내 맴돈다.

▲ 밀양다목적댐은 K-water가 1991년 착공해 2001년 11월에 완공했다. 밀양시, 양산시, 창녕군 등 지역에 안정적이고 깨끗한 수돗물공급과 홍수 예방 및 관광 자원화를 위해 지어졌다. 밀양댐은 용수공급능력 7300만㎥, 홍수조절능력 600만㎥, 수력발전량은 연간 700만kW/h로 약 1600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밀양시, 양산시, 창녕군 등 50만 명의 주민들에게 연간 5080만㎥의 생활용수와 1310만㎥의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한편 2016년 10월 '밀양댐 주변 관광 명소화사업'의 일환으로 댐 정상부를 상시개방했다. 특히, 밀양댐은 기존 댐과는 달리 수몰지역에서 키운 수목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환경친화적으로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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