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마다 난리여서 안 오려 했는데, 배가 고파서..."

사회 / 왕보현 기자 / 2020-03-10 11:18:04
-코로나19 장기화로 취약계층 기본적인 삶조차 무너져-
-마스크보다 시급한 ‘굶주림’, 정부와 민간단체 머리 맞대야-
-이웃사랑의 따뜻한 손길 ‘코로나19’도 이겨낼 것-
-급식소 공백 푸드뱅크·바우처로 해결해야-

[코리아 투어 프레스=왕보현 기자]

▲ 밥퍼나눔운동본부 최홍 부본부장(좌에서 두 번째)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다.

“오늘은 보름 만에 밥을 먹게 되었네요” 제기동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김 모씨가 활짝 웃으면 말했다. 그는 “뉴스마다 난리여서 안 오려고 했는데 그동안 밥을 주는 곳이 없어서 굶기도 하고 빵이나 컵라면 등으로 때웠다”고 말을 이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청량리역 인근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차단을 위해 지난 2월 21일부터 3월 7일까지 급식을 중단하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잠깐멈춤이다. 급식을 중단하며 다일공동체는 “3월 9일 다시 밥퍼의 문을 여는 날 만나자”했다. 그 말을 기억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한 두명씩 모이더니 어느덧 긴 줄을 이뤘다.

▲ 밥퍼나눔운동본부의 자원봉사자들이 5백인분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밥퍼 측은 모처럼 나눠주는 도시락이어서 밥을 2개씩 넣었다고 밝혔다.

밥퍼나눔운동본부 최 홍 부본부장은 “코로나19의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밥퍼의 사역을 다시 보름 동안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에게는 도시락을 드립니다. 또 마스크와 손세정제, 소독용 티슈도 함께 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건강 잘 지켜 보름 뒤에 기쁨으로 뵙겠습니다”라고 안내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 준비한 도시락을 전달했다.
▲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져 한쪽발이 뒤틀어진 딸(사진 좌측)의 신발은 늘 한쪽면만 닳는다. 수시로 신발을 바꿔신는 모녀

이날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 선 사람들 가운데 한 모녀가 눈에 띄었다. 뇌병변을 앓고 있는 딸(34)의 손을 꼭 잡고 차례를 기다리는 이OO씨(64). 딸의 걸음걸이가 한쪽에 쏠려 왼발과 오른발의 신발을 바꿔서 신고 있었다. 이문동에서 살고 있다는 모녀도 대부분의 끼니를 무료급식소를 이용해 왔다. 간혹 어머니가 밥을 끓이기도 하지만 반찬도 없고 영양을 맞추지 못해 딸의 몸이 홀쭐해 졌다고 말한다. 평생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딸을 돌보느라 어머니는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 모자가 밥퍼에서 나눠준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부친은 병중이어서 65세의 아들이 도시락을 하나 더 받았다.


이날 청량리역밥퍼에선 혹시나 하고 찾아온 노인과 노숙인 300명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최 홍 부본부장은 “급식 중단 보름이 지난 오늘은 공동급식을 할 수 있기를 소망했는데, 다시 2주일 동안 더 중단하게 되어 가슴아프다”며 “지금은 함께 식사할 수 없지만 보름 뒤인 3월 23일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한다.”고 했다.

다일공동체 김미경 실장은 “수도권 전 지역에서 전철 등을 이용해 배고픈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며 “배고픈 노인들과 노숙인들의 허기를 채워주려 하지만 코로나 19의 지역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 배고픔을 보고도 밥을 줄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난다.”고 아쉬워했다.

▲ 밥퍼’에서는 혹시나 하고 찾아온 노인들과 노숙인 300명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최홍 부본부장은 “급식 중단 보름이 지난 오늘은 공동급식을 할 수 있기를 기도했는데, 다시 2주일 더 중단하게 되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지하철 기관사로 근무하며 10년 넘게 밥퍼 주방에서 자원봉사자 김동열 씨는 “무료급식소 한 군데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배고픈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관공서와 지역 교회들의 음식 나눔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 다일공동체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따라 인근 다일천사병원 앞에 대형쌀독을 설치해 저소득 가구 중 필요한 사람은 누구와 찾아와 필요한 만큼 쌀을 퍼갈 수 있게 했다.

한편, 다일공동체에서는 무상급식 중단에 따라 인근 다일천사병원 앞에 대형쌀독을 설치했다.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와서 필요한 만큼 쌀도 퍼가고 취약계층을 위해 다일천사병원에서는 마스크와 소독약도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 밥퍼에서는 급식중단이 2주간 추가 연장되자 이날 혹시나 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했다. 특별히 밥을 2팩 넣어주고, 3가지 반찬과 방울토마토 그리고 손세정제와 마스크, 소독용티슈를 함께 전달했다.

저소득 위기가구의 복지를 담당하는 전국 각 시군에서는 주 1~3회 대체식으로 컵라면, 즉석밥 등 간편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제공받지 못하고 사회안전망에서 빠져있는 행려자, 노숙인과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 빈곤층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제기동 프란치스코의 집 시설장 김수희 수사는 “여기서마저 밥을 나눠주지 않으면 정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길 겁니다. 최대한 위생과 방역에 신경 쓰면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기도한다”고 밝혔다.
▲ 지난 8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NGO 단체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회적거리두기’가 중요한 현시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어서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무료급식소 운영 중단으로 인한 공백을 ‘푸드뱅크 확대나 식사 바우처’ 등으로 채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10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취약계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지자체와 함께 점검해주시기 바란다.”며 “특히 홀로 계신 어르신과 노숙인, 결식아동, 중증 장애인 등이 코로나19로 끼니를 거르거나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챙겨달라”고 주문했다.

▲ ‘밥퍼’에서 도시락을 받아 인근의 빈 창고에서 식사를 하던 노숙인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에요. 밥퍼에서도 저녁까지 먹으라며 밥을 하나 더 주었구요, 아침에는 청량리역 앞에서 동대문구에서 나오신 분들이 컵라면하고 즉석밥도 주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우리 사회가 미처 돌보지 못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취약계층의 긴급 돌봄체계 가동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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