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예와 임꺽정의 꿈이 서린 철원평야
- 한가위 앞두고 황금벌판 이뤄
[티티씨뉴스 · 강원 철원=글 · 사진 왕보현 기자]
이현종 철원군수는 홈페이지 인사말을 “아름다운 한탄강이 철원평야를 적시고, 밥맛 좋은‘철원 오대쌀’의 황금 물결이 넘실대는 철원군을….” 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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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평야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철원읍 소이산(362m)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철원평야의 배경으로 북녘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
후삼국 시대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태봉국의 수도 철원은 현재도 강원도 최대의 쌀 생산지이다. 조선 시대에는 임꺽정이 석성을 쌓고 활동하던 무대도 철원이다. 철원평야 위에 조각배처럼 떠 있는 작은 산 소이산 전망대를 찾았다. 손에 잡힐 듯한 뭉게구름은 남과 북을 유유히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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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북단 지역인 철원평야는 북한과 접하고 있어 드넓은 평야의 일부는 민간인통제구역(DMZ) 안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벼배기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 지역이어서 이미 수확을 끝낸 논도 제법 눈에 띄었다. |
소이산(362m)과 철원평야의 표고 차는 200여m에 불과하다. 그러나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광활한 철원의 들녘이 내려 보이고, 경원선 철길 따라 금강산 가는 기차가 지나던 옛 철원의 시가는 1930년대 인구 2만 명이 거주하던 강원도의 중심지였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인 백마고지와 삼자매봉, 아이스크림 고지와 저격능선, 그리고 김일성 고지(고암산)와 평강고원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북녘땅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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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평야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ㆍ동송읍ㆍ갈말읍ㆍ김화읍ㆍ서면ㆍ근북면과 평강군 남면 등에 걸쳐 있는 강원도 최대의 곡창지대이다. |
황금벌판을 이룬 철원평야에 벼 베기가 시작되었다. 소이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민간인 통제지역(민통선)으로 사전에 출입을 허가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취재진은 민통선 이남 지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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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무장지대의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원오대쌀’은 타 지역의 쌀에 비해 좋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철원 동송농협 관계자는 “쌀의 품질과 가치는 결국 밥맛이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결정된다. 철원 지역은 맑은 물과 청량한 공기, 기름진 황토 등 청정 환경에서 생산되어 전국에서도 최고의 밥맛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금강산로 이길리 들녘에 콤바인이 힘차게 돌아간다.
지난여름 54일에 이르는 최장기간 장마와 연이은 태풍, 그리고 마을 전체가 침수되는 난리를 겪은 이길리의 가을은 그래서 더욱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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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 윤둔락 씨가 자신의 논에서 수확한 벼를 들고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뭉게구름 걸린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진 황금벌판 뒤로는 군사분계선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벼 베기가 한창인 들녘에서 43년 전 일자리를 찾아 아내와 중고등학교 다니는 3형제를 이끌고 고향 양구를 떠나 철원읍에 자리 잡았다는 윤둔락(80, 철원읍 화지리)씨를 만났다.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들 셋의 학비는 둘째치고 번번한 땟거리도 없을 정도로 궁핍했어요. 닥치는 대로 일해서 농토를 마련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아들 3형제가 장성하고, 이제는 논농사만 14,000평을 지을 정도로 안정되었다”라고 말한다. 부부 교사로 정년을 앞둔 큰아들, 둘째 아들은 목사이고 둘째 며느리는 박사로 대학교수, 셋째는 포천의 큰 공장의 이사로 성공해 이제 삶의 걱정은 하나도 없다. 우리 가족이 철원에 들어와 지금까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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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콤바인이 가을들녘의 황금 벼 사이를 오가며 베어낸 알곡이 순식간 트레일러를 가득 채웠다. |
철원평야에서 나는 쌀의 인기 비결을 묻자 윤 씨는 “한탄강이 흐르는 철원평야에서 나는 오대쌀은 춥고 긴 겨울, 낮과 밤의 큰 일교차, 기름진 황토, 풍부한 일조량, 청정한 물과 공기 등으로 최고의 쌀이 생산된다.”라며 자랑한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기는 황금벌판이지만 올해 농사는 풍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올여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벼가 햇볕을 못 받아 성장이 좋지 않다. 예년의 70% 정도 수확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 논은 나은 편이고 저 아래 논들은 여름 홍수에 잠겨서 거의 수확을 포기한 집이 많다.”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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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부 윤둔락 씨가 자신의 논에 벼를 수확하며 알곡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이제 추수를 시작했으니 곧 두루미 등 겨울 철새가 철원평야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철원의 농부들은 떨어진 알곡들을 논에 그대로 놔둔다. 철새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다. 철새들에게는 남쪽도 북쪽도 없고 군사분계선도 없다. 그저 하늘을 맘껏 나는 자유가 있을 뿐이다. 철원평야의 황금벌판이 한가위를 맞는 우리 마음속에 평화로 그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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