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엔 송편이 최고” 고려인 어린이들의 첫 추석맞이
- 기획·특집 / 왕보현 기자 / 2024-09-15 17:36:12
- 명절 맞아 예절 교육 및 송편 빚기, 전통놀이 체험
- 제천시, 고려인 영구 귀국 지원... 129세대 335명 둥지 틀어
- 고려인들, 축소되어가는 도시에 활력 되기를 희망
[티티씨뉴스제천=글·사진 왕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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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고..." 고려인 어린이들이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충북 제천 제천향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통예절 배우고 있다. |
“남자 어린이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여자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놓고 배꼽위에 살며시 올려놓습니다.”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충북 제천시 제천향교 풍화루 누각이 떠들썩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 14명이 전통예절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서투른 손놀림과 어색한 모습을 연출한다. 추석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이날 제천 지방 낮 기온은 32도를 훌쩍 넘었다. 연신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내는 이연복 예절강사는 더위를 쫒아낼 듯 우렁찬 소리로 어린이들의 동작을 고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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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는 어린이들,,, 한복을 차여 입은 어린이들이 전통예절에 따라 큰절을 하고 있다. |
마루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하는 어린이들... 그런데 어린이들의 대화와 얼굴 표정이 조금은 달라 보인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살던 고려인 동포의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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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구슬땀이 맺혀도 어린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한국으로 와서 배운 배꼽인사도 적응이 덜 되었는데 한복을 입고 큰절을 배운다. 고려인 5세 6세인 어린이들이지만 한국인 DNA가 그대로 있는지 바로 적응한다. 동작도 세련되게 큰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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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조다(10, 초등학교3학년) 어린이는 “큰절을 하다 엉덩방아를 찌었다”면서 “추석이 뭔지 잘 몰랐는데 예쁜 한복을 입고 ‘절하는 방법’을 배우니 즐겁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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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는 추석을 앞둔 지난 11일 제천향교에서 고려인 동포자녀 추석명절 예절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큰절과 반절(작은절)을 배운 후 14명의 어린이들은 추석 송편 빚기에 도전했다.
향교에서 미리 준비한 쌀가루 반죽을 고사리 손으로 주물러 달을 닮은 송편을 빚는다. “송편은 우리 고유 명절인 추석에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한 뒤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음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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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인 어린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송편을 빚고 있다. |
풍화루 누각 2층 마루에 둘러앉은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설명해 준대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반죽된 흰쌀가루를 동그랗게 만든 후 조물조물 반죽을 넓혀 소를 넣고 조심스럽게 오므리며 송편을 빚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4살 5살 동생들은 송편 만들기엔 관심이 없는 듯 마당에서 뛰놀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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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학년 어린이들은 동생들의 산만함을 꾸짖기도 하면서 송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기본적인 형태의 송편을 몇 개씩 만들어 본 후에는 자신만의 캐릭터 송편도 만들어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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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송편 만들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마당으로 내려와 우리 전통놀이인 투호놀이와 제기차기를 즐겼다. 무더운 날씨지만 놀이는 즐겁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기차기에 도전하고 투호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고 정신을 집중한다. 향교마당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가 제천시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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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체험을 마친 어린이들은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향교의 시설들을 돌아본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제천향교는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지어진 제천향교는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선조 23년(15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그 뒤 순종 융희 1년(1907)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불에 타 없어졌고 1922년에 대성전을 다시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고 그 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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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예절교육에 참관한 엄마 아리나는 “우리를 위해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향교에 와서 전통 예절도 배우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좋다.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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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예절 교육과 송편빚기를 마친 어린이들이 제기차기를 배우고 있다. |
김창규 제천시장은 “고려인 동포 자녀들이 우리 문화를 익히고 함께 추석을 준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동포 자녀들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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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려인은 구 소련 붕괴 후 러시아·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사는 50만 명가량 한민족 동포를 이르는 명칭이다. 19세기부터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인이 기원이다. 연해주는 독립운동 거점이 되기도 했다. 1937년 소련 내 조선인 결집을 경계한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로 강제 이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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