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 보리 베기와 모내기의 계절
- 라이프 / 왕보현 기자 / 2024-06-02 00:02:48
- 누런 보리밭과 어울린 모내기 풍경
- 보리는 망종전에 베어야...
[티티씨뉴스 김제=글·사진 왕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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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5일은 ‘망종(芒種)’이다.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 6일 전후이다. 망종이란 벼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으로,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의 한 농촌들녘에서 논두렁을 사이에 두고 콤바인으로 보리베기에 분주한 가운데 윗논에서는 이양기로 모심기를 마치고 듬성듬성 모가 심어지지 않은 곳에 한 농민이 손으로 모를 심고 있다. |
지난달 29일 새벽 지평선 너머로 먼동이 트기 전 부지런한 농부의 발걸음은 들녘을 향했다. 무논의 물고를 보고 농삿일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동트기 전 광활 벌판을 찾은 최병희(78, 광활면)씨는 논두렁을 걸어 나오며 “내일은 트랙터를 이용해 써래질을 하고 3~4일 후에 모내기를 할 예정이다”면서, “요즘은 촌에 사람이 없어 모든 일을 다 기계로 하다 보니 농삿일이 편해지긴 했지만 정이 없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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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동트기 전 최병희(78, 광활면)씨가 논물을 보러 나왔다. |
망종을 일주일 남긴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인 전북 김제시 김제평야는 어느 때 보다 바쁘다.
망종은 밭에 씨앗을 뿌리는 절기인데 보리를 베어야 밭갈이도 할 수 있고 이 일이 모내기와 겹치니 일손이 태부족이다. 미증유의 초저출산 문제는 농촌의 고령화와 함께 지평선이 이어지는 김제평야에 사람보다 기계가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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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에서는 망종을 앞두고 보리베기와 함께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
한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고 누렇게 익은 보리밭에는 콤바인이 누비며 보리나락을 수확하고, 트렉터는 무논을 돌며 써레질한다. 모판을 앞뒤로 짊어진 이앙기는 모 심기에 바쁘다.
“망종에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일 년 중 눈코 뜰 새 없는 가장 바쁜 시기이다. 한 겨울 지내고 고픈 배를 쥐어짜던 시절 그래도 보리를 수확하면서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던 희망의 시기이다. 모내기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풍년에 대한 기대감도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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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전 김제평야의 한 보리밭에서 콤바인이 햇보리 수확이 여념이 없다. |
옥포리 들판에서 모내기를 하던 박동훈(76), 정정순(70)씨 부부는 “콩, 보리, 감자, 벼를 철에 따라 심고 가꾸고 수확하려면 1년 12달 쉴 틈이 없다”면서 “조상이 물려준 땅에서 이렇게 평생 농사를 짓다보니 아들 하나 딸 둘은 모두 대처로 나가고 부부만 남아 고향땅을 지키며 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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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 보리를 베어낸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김제평야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 무리가 모인 것을 보고 찾아가니 70대 할머니들과 20대 외국인 여성들 30여 명이 아침 식사로 빵과 음료수를 먹고 있다. 비닐하우스의 비닐을 벗기고 트렉터가 밭을 갈아 업자 틈실한 감자들이 땅 위로 올라온다. 엉덩이 쿳션을 한 일꾼들이 크기에 따라 정해진 종이상자에 담아내는 것이 마치 콘베어벨트로 물건이 지나는 듯하다. 잠간 하우스 하나에서 수확을 마치고 다시 이웃한 하우스로 이동해서 작업한다. 고령의 숙달된 할머니들이 젊은 외국인 계절 근로자를 지도해 감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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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평야의 한 감자밭에서 포실포실한 지평선 수미감자를 수확하고 있다. |
감자를 수확하고 있던 김이순(76)씨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수미감자는 모양도 울퉁불퉁한 다른 감자에 비해 동그랗고 매끄럽다”면서 “간척지 토양이 부드러워 물 빠짐이 좋은데다가 한 겨울 서해 해풍을 맞고 자라 맛도 모양도 일품”이라며 엄지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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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정읍시·부안군·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 펼쳐진 김제평야는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발달된 충적평야와 그 주변의 넓은 야산지대를 중심으로 한 침식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이른바 ‘김만경평야(金萬頃平野)’ 혹은 ‘김제만경평야’로 불리며,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
농기계가 일반화 되기 전 김제평야에는 주민들의 일손만으로는 태부족이어 ‘식량증산’을 기치로 각종 단체에서 ‘모내기 일손돕기’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요즈음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해가 중천에 뜨고 허기가 몰려오자 “혹시 새참은 언제 나오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새참은 없어 졌고 조금 있다 면사무소 옆 식당에 가서 점심 먹고 다시 일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모내기 일손을 잠시 멈추고 막걸리 잔을 돌리던 풍경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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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앙기가 지나간 자리에 한 농부가 모를 손으로 보충하고 있다. |
‘부지깽이도 따라나선다’는 농번기 들녁에 사람들은 볼 수 없고 요즈음 농촌에는 콤바인, 트랙터, 이앙기소리만 들려온다. 사람의 손이 필요한 곳은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품앗이’와 ‘새참’의 추억이 사라진 농촌 들녁에 ‘식량증산’을 독려하던 표어 대신‘벼 재배 면적을 줄여 식량 과잉생산을 막자’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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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평야 모내기를 마친 논에 지난 겨울 감자 농사에 활용되었던 비닐하우스용 골조가 반영을 그리고 있다. |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 젊은이들이 사라진 농촌에서 노구를 이끌고 더러는 전동카트를 타고서라도 땅을 지키는 어르신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가을의 풍요를 꿈꾸는 것처럼, 선조들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농촌에 젊은이들이 돌아와 옥토가 다시 한 번 기회의 땅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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